
가방이 필요했습니다. 시간표에 맞춰 이 책, 저 책 …. 많이도 들어갑니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도 오래 쓸 수 있으면 좋았습니다. 입시생의 굴레를 벗어나자 나만의 가방이 필요했습니다. 지갑 사정도 고려해야 했고, 보기에도 좋은 가성비가 중요합니다. 책과는 먼 물품들로 가방을 채우기도 했고, 때와 장소에 따라 가방이 따로 따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여유로운 총알 속에 명품 가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간다는 만족도 있고, 용도, 가성비 이런 것들 보다는 내가 OO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것, 저것 많은 학원을 다닙니다. 어느 것이 우리 아이의 적성인지 모르니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합니다. 시간도 많으니 딴 짓 못하게 학원에서 학원으로 돌립니다. 학원비, 학습지 부담도 조금은 덜하다고 느껴집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게됩니다. 예체능에서 중요과목으로 옮겨갑니다. 때로는 같은 가격에 종합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곧 따로, 따로 전문학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선 고등학생이나, 그렇지 못한 학생이나 ‘인 서울’이라는 브랜드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 애는 OO대학생이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학과, 학점,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OO대학교 학생이니까요.

시험이 끝나고 학원들은 심판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적에 따라서 한 번 더 기회를 얻기도, 잃기도 합니다.
‘방법을 좀 바꾸려고요 …’, ‘분위기 전환이 필요해서요 … ’, ‘조금 쉬려고요 …’ 저마다의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초1의 인구가 고3의 절반을 조금 넘어서지만, 학원은 줄지 않습니다. 닥쳐올 위기의 시대에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습니다. 그것이 정작 학생을 위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불안하니까요. 새로 오겠다는 사람도 붙잡습니다. 전에 다녔던 학원을 디스하면서 말이죠. 그 원인이 학생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겠다는 사람이니까요.
돌이켜보면 저런 ‘가방들이 필요했나? 내게 어울렸나? 가방 때문에 내가 OO처럼 보였나?’하는 의문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가방들을 들고 다녔던 나는 계속 나였기 때문입니다.

방법을 바꾼다고, 학원을 옮긴다고 성적이 나아지는 것일까? 이런 아이, 저런 아이도 경험하면서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니까요. 우리 아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 학생을 위한 최선에서 출발합니다. 비록 시간이 오래 오래 걸리고,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그것이 옳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명품 가방이 나를 대변해 주지 않는다. 그 가방을 들고 다니는 ‘내’가 중요하다.

[내일신문 이태우 원장 기고 2017.7.25 1242호]
Please Wait ...